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이사르의 내전 (문단 편집) === 양군의 움직임 === 폼페이우스의 부하 중 마르쿠스 옥타비우스가 있었는데 그는 카이사르에게 붙은 살로나이(살로나)라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원주민에게 폼페이우스에게로 넘어오라고 설득하였으나 이들이 말을 듣지 않자 도시를 포위하였다. 살로나이 주민들은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견디다 마침내 이들은 기습을 하기로 마음먹고 어느 날 갑자기 성문을 열고 전원이 돌격하였다. 이들은 다섯 겹의 진지를 모두 격파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옥타비우스는 패주해 달아났다. 한편, 그리스에 상륙한 카이사르는 히스파니아에서 자신에게 항복한 루푸스를 폼페이우스에게 사절로 보내서 강화를 맺자고 제의하기로 하였다. 그는 폼페이우스가 상실한 속주와 자신의 손실을 언급한 뒤 지금이 강화를 맺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라면서 폼페이우스가 원한다면 3일 내에 서로 군대를 해산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전달할 말을 전해듣고 풀려난 루푸스는 즉시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폼페이우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폼페이우스는 이상하게도 해군을 맡은 비불루스로부터 카이사르에 대한 어떤 소식도 전해듣지 못하였고 따라서 카이사르가 도착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테살리아에서 신병들을 훈련시킨 뒤 디라키움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곧 루푸스가 도착해 소식을 알리자 폼페이우스는 크게 놀랐다. 카이사르가 도착하였다면 해안 도시들이 카이사르에게 넘어갈 위험이 있었고 그렇게 되면 아드리아 해에 위치한 비불루스의 함대는 고립되므로 제해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의 보급은 원할할 것이기 때문에 지구전의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폼페이우스는 아폴로니아를 향해 강행군하였다. 카이사르는 도착하자마자 오리쿰으로 강행군하였고 오리쿰 주민들은 카이사르가 직접 오자 그에게 항복하였다. 그 뒤 카이사르는 바로 아폴로니아로 이동하였으며 그들 역시 카이사르에게 항복하였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항복한 이유는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언제 도착할 것인가에 대한 기약이 없던데다 카이사르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속주민의 눈으로 보기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싸움은 로마의 내분이었으며 이 상황에서 로마의 현직 집정관에 현 로마 원로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카이사르는 로마 정부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